철학에서 ‘브랜딩’을 발견한 디자이너


[BAT 바톤터치 인터뷰_브랜드 디자이너 최지은]

BAT 크루들의 릴레이 인터뷰 ‘바톤터치(BATon touch)’

BAT는 브랜드의 런칭부터 빠른 성장까지 브랜드에 필요한 모든 솔루션을 기획, 실행하는 ‘국내 유일의 종합 브랜드 에이전시’입니다. BAT는 에이전시로서의 정체성 이전에 ‘탁월한 프로페셔널들의 커뮤니티’를 지향하며, 존경할 만한 동료들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끊임없이 성장하는 ‘프로페셔널리즘’과 개인보다 뛰어난 팀을 추구하는 ‘펠로우십’을 통해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며, 더 나아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BAT 크루들.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과 자극이 되는 BAT 사람들의 릴레이 인터뷰 ‘바톤터치(BATon touch)’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브랜드 디자이너는 문제의 알맞은 해결 방식을 찾아내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 솔루션이 시각적인 방식일 때가 있고, 전략의 비중이 커야 할 때가 있는데 그 판단을 하는 사람이 브랜드 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디자이너 지은님을 만나다

올해 BAT에는 기존의 브랜드 디자인 그룹을 대신해 새로운 이름의 그룹이 생겼습니다. 바로 브랜드 익스피리언스(Brand Experience) 그룹인데요. 디자인팀과 브랜드전략팀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관념의 브랜드를 실체화하여 사람들에게 일관된 경험을 제공하고 브랜드의 정체성 구축을 위한 전략을 세웁니다. 어쩌면 이들에게서 ‘브랜딩이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의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랜딩을 이해하는 관점을 넓히기 위해 종종 철학책을 읽는다는 디자인 파트 4팀의 브랜드 디자이너 지은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Editor 김미지
Photographer 이인애


안녕하세요, 지은님. 열여덟 번째 바톤터치 주자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인터뷰 소식을 전하자 무척 놀라셨던 기억이 남아요. 인터뷰이가 된 소감과 요즘 BAT에서의 근황을 말씀해 주세요. 

언젠가 바톤을 넘겨받는 날을 막연히 상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습니다. (웃음) 함께 일하며 영감을 받은 멤버로 뽑아 주신 이현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고요.

BAT에서의 근황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주로 브랜딩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고 있어요. 기업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재정립하거나, 브랜드 로고와 모티프를 제작하고, 브랜딩 과정을 구조화하여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을 해요. 

지은님은 프리랜서와 스타트업을 거쳐 2020년 BAT에 입사하셨다고요. 그전에는 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원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었어요.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을 프리랜서로 시작했죠.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수많은 작업을 기한 내에 혼자서 해내야 했어요. 대부분 집 안에서요. 외로운 시간이 많았고,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다음을 설계할 여유가 생기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취업을 결심하고 IT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 회사에 들어가 콘텐츠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그곳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했다는 점이었어요. 당시에는 국내 IT 기업 중에 캐릭터를 내세워 브랜딩하는 회사가 거의 없었거든요. 그러던 중 회사의 브랜드 전략을 변경하는 일이 있었고, 그 과정에 합류하면서 ‘기업에 필요한 브랜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처음 해볼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브랜딩 업무는 그때가 처음이었고요. 

브랜딩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나름 진지하게 고민해 기획을 완성했지만, 제가 가진 경험의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온전히 제가 의도한 방향으로 직원들을 설득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과정이 무척 재미있었고요. 당시의 경험이 브랜딩 업무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BAT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네요.

BAT를 통해 브랜딩의 세계에 발을 깊숙이 들이신 거네요. 많은 회사 중에 BAT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경험이 많지 않아도 열의를 가지고 뛰어든 사람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제 경험을 충분히 인정해 주기도 했고요. 저는 일할 때 스스로 납득되지 않는 문제를 마주하면, 합리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에 대한 주체성을 잃고 싶지 않기에 고객사와의 협업은 물론 내부 팀원들과의 협업에서도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아야만 저와 팀원들의 잠재력을 온전히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BAT는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 방식을 추구하는 열린 조직이라는 인상을 받았고요.  

입사 4년 차로 무수히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하셨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브랜드 리뉴얼을 진행했던 ‘씨젠’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습니다. 씨젠은 분자진단 기술을 통해 다양한 질병을 진단하는 기업으로, 국내에서는 코로나 19 진단 기술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씨젠의 시각 아이덴티티를 리뉴얼하는 과업을 요청하셔서 함께 협업하게 된 케이스였어요. 씨젠은 이미 분자진단 기술 기업으로 20여 년간 쌓아온 고유한 역사가 있는 고객사였는데요. 잃지 말아야 할 씨젠만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더불어 미래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새롭게 취해야 할 비주얼 전략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습니다. 

기업의 시각 아이덴티티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내부 이해관계자들과 시장의 다양한 관점이 교차되곤 하는데요. 저를 비롯한 TF 멤버 모두 이러한 관점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씨젠에게 필요한 우선순위를 파악하여 적합한 비주얼 전략을 수립하고 시각화하는 작업까지 깊이 있게 접근해 볼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관점을 수렴해 나가는 경험이 큰 배움으로 남았고요.

브랜드 디자이너는 ‘디자인’ 업무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 같아요. 특히 BAT에서는요. (웃음) 평소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철학책을 즐겨 읽으신다고 들었어요.

시각적인 아웃풋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브랜딩 업무의 핵심은 본질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철학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왜 브랜딩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에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아요. 저는 철학과 브랜딩이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추구하는 목적과 구조적인 측면에서요.

하나의 철학 사상에는 여러 계파가 존재하잖아요. 당대 유행했던 비평가들이 서로의 견해를 토론하다가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낼 때도 있죠. 하지만 결국 모든 철학은 세상을 탐구하고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존재해요. 브랜딩도 처음에는 마케팅의 일부분이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가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기조가 있었고 이를 인정받아 하나의 카테고리가 되었어요. 또, 지금의 브랜딩은 어떤가요? 디자인, 전략, 퍼포먼스 등 더 세분화되는 단계에 이르렀지요. 목적도 비슷하죠. 본질을 파악하고 이를 상대에게 설득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철학책을 읽으면 지금 제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어 좋아요. 

시간이 되신다면 『철학책 독서모임』이라는 책을 읽어 보시는 것을 추천해요.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철학을 다루는데 이를 브랜딩으로 치환해 봐도 재밌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축적된 인사이트를 통해 브랜드 디자이너란 무엇인지 답을 찾으셨나요?

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브랜드 디자이너는 문제의 알맞은 해결 방식을 찾아내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 솔루션이 시각적인 방식일 때가 있고, 전략의 비중이 커야 할 때가 있는데 그 판단을 하는 사람이 브랜드 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간혹 브랜드 디자이너를 비주얼적인 산출물만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맞지만 브랜드 디자이너라면 비즈니스 영역과 전략에 대한 이해도를 브랜딩 관점에서 확장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일에 대한 주체적인 태도가 중요하고요.

브랜드 디자인은 브랜드의 가치와 목표를 잘 이해한 후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네요. 함께 일하는 사람이 많으면 각자 해석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모두 다를 텐데, 이를 하나의 결과물로 이끄는 지은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제가 조금 더 집중하는 부분은 개개인들이 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는 태도예요.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으니, 이를 받아들이되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은 그 자리에서 충분히 논의하며 풀고 가야 해요. 그래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한 가지 방향으로 아이디어가 모여서 엉뚱한 결과가 나오지 않죠.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은님은 디자인 파트 4팀의 파트장을 맡고 계신데요. 팀원들과 합을 맞춰가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또, 납득 불가능한 상황이 생겼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어떤 문제를 맞닥뜨리거나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목적이 분명한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노력해요. 때로는 오랜 시간, 매우 촘촘하게요. 이는 파트 운영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적용되는데요. 일하다 보면 상대와 합이 안 맞는다고 느끼는 지점이 분명히 생겨요. 서로 싫어서가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된 경우가 많죠. 그러면 저는, 상대와 내가 다르다는 전제하에 대화를 제안해요. 여기서 포인트는 단순한 대화가 아닌, 방향과 목적이 분명한 대화예요. 우리가 왜 이 지점에서 다르다고 생각했지?’에서 출발해 문제점을 발견하기까지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인 거죠. 누군가는 불필요한 시간을 들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일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어요. 

문제를 직면하고 스스럼없이 의견을 공유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에요. 이를 위해 디자인 파트 4팀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대화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어요.

저희 팀은 ‘퀘스트타임’이라고 불러요. 일하면서 떠오른 의문점과 질문에 대한 답을 팀원들과 함께 찾아가고자 만든 시간이죠. 처음에는 회의 전 인사이트를 주고받는 시간에서 시작했는데, 이야기를 나눠 보니 팀원들이 모두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회사에 다니는 것을 발견했어요. 조금 더 나은 업무 환경과 일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장입니다. 최근 주제는 ‘회사생활이 조금 더 즐거워질 수 있는 방법’이었고요.

2023년 첫 바톤터치 인터뷰이인데, 올해 꼭 이뤄내고 싶은 일이 있을까요? 가능하면 회사에서의 목표와 개인적인 목표를 따로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BAT에서는 새로운 시스템을 잘 소화하는 게 목표예요. 현재 사내 비즈니스의 새 모델을 구축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이 일을 잘 소화해 내서 전사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남기고 싶어요. 추후 프로세스를 정리해 어떤 비즈니스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으로 제작할 계획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삶에서는 건강하기. 이 일을 해내기 위해서라도 건강해야 합니다. (웃음)

끝으로 바톤터치에서 보고 싶은 다음 주자를 선정해 주세요. 그 분에게 건네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크리에이티브 그룹의 PD 김다솔 님을 추천합니다. 입사동기이기도 한 다솔님은 BAT에서 브랜딩, 캠페인, 콘텐츠 등 다양한 프로젝트의 영상 전반을 담당하시며 늘 새롭고 크리에이티브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시는데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시청각 매체에 온전히 담아 내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한계를 느낄 때가 종종 있거든요. 다솔님이 작업하는 과정과 영상에 브랜드를 녹이는 방법, 나아가 꾸준히 본인만의 영역을 구축하실 수 있었던 관점과 노하우가 무엇인지 여쭙고 싶어요.